동남아 철벽수비 뚫었다, 그랩을 뒤흔든 ‘원조’ 타다

2024-03-14

동남아 철벽수비 뚫었다, 그랩을 뒤흔든 ‘원조’ 타다



2024.03.14 중앙일

By 원은지 기자



동남아 모빌리티 시장은 지역 맹주들의 격전장이다. 운송부터 금융까지 모든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그랩(시가총액 16조원)과 고젝(시총 7조원)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클 만큼 큰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법한데 이 시장에서 뾰족하게 크고 있는 한국 모빌리티 서비스가 있다. 스타트업 엠블이 운영하는 ‘타다(TADA)’다. 비바리퍼블리카(토스)가 소유한 한국 타다와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회사·서비스다. 현재 싱가포르·캄보디아·베트남에서 기사 25만 명을 확보했으며 누적 이용자 수는 250만 명 이상. 핵심 시장인 싱가포르 이용자는 200만 명으로 그랩에 이어 2위 사업자다.


엠블은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한 우경식(44) 대표가 2012년 설립(당시 사명은 이지식스)한 스타트업이다. 위치기반 만남 앱 등 여러 사업 아이템을 시도한 끝에 2018년 7월 싱가포르에 라이드 헤일링(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를 선보였다. 현재까지 누적 투자유치액은 341억원. 신한은행·SV인베스트먼트·트라이브벤처스 등이 주요 투자자다. 엠블은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동남아에서 지역 강자들의 단단한 방어벽을 어떻게 뚫고 살아남았을까. 우경식 대표를 지난 1월 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후 추가로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 대표는 “그랩과 고젝과는 다른 우리만의 방법이 통했고, 그 방법을 꾸준히 지켰더니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목차

1. 박리다매, 모빌리티에서도 통한다

2. 차량 생산부터 데이터까지

3. 생존의 비결은 ‘약속 지키기’

4. 엠블의 미래는



1. 박리다매, 모빌리티에서도 통한다

그랩과 고젝 사이 시장을 뚫기 위해 엠블이 선택한 전략은 ‘박리다매’였다. 수수료를 경쟁사에 비해 낮춘 ‘제로 커미션(수수료)’ 정책이다.


Q 제로 커미션 정책은 뭔가.


그랩과 고젝은 기사로부터 20~30%의 수수료와 소프트웨어 사용료를 받는다. 우리는 소프트웨어 사용료만 받고 운행 요금에 따른 수수료는 받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사용료는 싱가포르 기준 운행 한 번당 60싱가포르센트(약 600원)정도다. 운행 수수료가 없으니 기사 부담도 적다.


Q 이미 그랩과 고젝이 시장을 선점했는데.


팬데믹이 기회가 됐다. 원래 그랩은 일정 수준 이상 운행 횟수를 채우면 수수료 일부를 인센티브로 기사에게 돌려줬다. 그런데 팬데믹이 오면서 기사들이 운행 횟수를 채우기 어려워졌다. 인센티브는 없고 수수료는 비싼 상황이 되자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기사 수가 많아지자 차량 호출하기가 더 편해졌고 승객 수가 다시 늘어나는 선순환이 시작됐다. 기사가 늘었지만 제로 커미션 정책은 계속 유지했다.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성장했고, 자체 생존이 가능한 이용자 규모를 확보했다. 지난해 흑자 전환도 이뤘다. 거점으로 삼고 있는 싱가포르 기준으로 2023년 거래액(GMV) 5000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 90억원에서 3년 새 약 55배가 됐다.


Q 수익은 어디서 내나.


소프트웨어 사용료와 승객 이용료가 전부다. 기존 플랫폼들은 많은 수수료를 받지만 별개로 충성도 유지 비용도 많이 쓴다.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수수료를 기사에게 돌려주는 인센티브 정책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그런 불필요한 비용을 쓰지 않았다. 빠르게 성장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 재무적으로 탄탄한 사업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Q 왜 한국이 아닌 동남아 시장인가.


우리같이 작은 스타트업에는 해결해야 할 명확한 문제가 있고, 그 해결을 위한 새로운 방법이 정책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시장이 낫다. 그래야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고, 새로운 모델이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모빌리티 시장은 택시 중심이며, 이용자인 택시 기사들은 시장 상황에 큰 불만이 없었다. 기존 택시와 같은 방식으로 서비스를 키우려면 마케팅 비용을 많이 써야만 했다. 새로운 방식을 쓰려는 사업자도 등장했지만 형사 기소까지 당한 사례가 있다. 그래서 우버와 그랩의 합병으로 독점 폐해가 심해진 동남아를 선택했다. 이 지역은 정책적으로 라이드 헤일링(택시 외 일반 차량도 포함)을 수용하고 장려했기 때문에 시장 진입이 가능했다.


Q 동남아 시장도 규제가 없지는 않았을 텐데.


한국 시장은 택시 시장이 워낙 고착화돼 있어 규제를 한 번에 바꾸기 어렵다. 동남아는 택시 시장이 형성되는 중에 라이드 헤일링 시장이 같이 커졌다. 싱가포르는 라이선스가 두 개가 있는데 택시 기사와 프라이빗 하이어(private hire)다. 이 프라이빗 하이어 기사들은 일반 차량을 가지고 라이드 헤일링에 참여할 수 있는 대신 길거리 손님을 태울 수는 없다. 한국보다 좀 더 합리적인 규제가 자리 잡았다.


Q 어느 정도 규모인가.


싱가포르·캄보디아·베트남을 합쳐서 확보한 기사 수가 25만 명 이상이다. 월간 활성 이용자수(MAU)는 250만 명 정도인데, 이 중 주요 시장인 싱가포르에서 200만 명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 내부 자료로는 싱가포르에서 고젝을 넘고 시장점유율 2위 사업자가 됐다. 지난달 태국에도 진출하면서 진출 국가 수에서 확실히 고젝을 넘었다. 고젝은 인도네시아·싱가포르·베트남 3개국에서 서비스를 운영하지만 우리는 4개국이다.


Q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타다(TADA)와 이름이 같다.


엠블의 타다 출시가 2018년 7월이다. 서비스명을 고민하다 부르기 쉽고, 한국어·영어·일본어에서 같은 발음, 다른 의미로 불려지는 타다를 찾았다. ‘짜잔’ 하면서 등장한다는 의미를 영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한국어로도 타다는 이동을 의미하는 동사이기 때문에 우리가 계획한 서비스와 가장 맞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타다(출시일 2018년 10월)는 우리 서비스명을 알고도 같은 이름으로 서비스를 출시한 걸로 알고 있다. 그때 우리 생각은 ‘우리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면 사람들은 우리를 타다로 기억할 것이다’였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2. 차량 제조부터 블록체인까지


엠블은 2022년부터 차량 제조 사업에도 진출했다. 전기삼륜차·오토바이 생산 사업인 ‘어니언’이다. 충전소와 같은 관련 인프라도 같이 만든다. 전기삼륜차 누적 생산대수는 700대다.


Q 어니언을 만든 이유는.


두 가지 이유였다. 차량 데이터를 확보하고 싶었는데, 앱으로 모으는 데이터에는 한계가 있었다. 제조업체에서 데이터를 받는 것도 어려웠다. 꼭 필요한 차량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생산이 필요했다. 마침 전략적 투자사들 중 ‘센트랄’이라는 자동차 부품 제조 회사가 있어 협업할 수 있었다. 두번째는 기존 타다 서비스와 시너지를 생각했다. 기사들이 저렴한 전기 툭툭이(삼륜차)로 운행한다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봤다.


Q 어떤 데이터를 얻을 수 있나.


배터리, 차량 주행 성능, 이동·주행 패턴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차량 운행에 필요한 데이터는 다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 중요하게 보는 데이터는 배터리 데이터다. 배터리 데이터는 배터리를 만드는 회사들조차도 소모량이 얼마나 되는지 데이터가 별로 없다. 이런 데이터들을 모아 별도 비즈니스도 가능할 것이라 본다.


Q 블록체인 사업도 하는데.


직접 ICO(가상자산공개)를 한 코인 ‘엠블’이 있다. 기사들을 위한 보상이나 차량 데이터에 신뢰성을 줄 수 있는 수단으로 쓴다. 타다를 이용하면 기사·이용자를 위한 크레딧이 쌓이는데, 이를 엠블 코인으로 교환할 수 있다. 차량 데이터는 위·변조가 되지 않았다는 신뢰가 중요하다. 블록체인에 이 데이터를 저장하게 되면 조작할 수가 없다. 앞으로는 NFT(대체불가능토큰)로도 활용할 수 있다. 가령 일본에 있는 사람이 싱가포르에 있는 전기삼륜차를 산다고 하자. 이 차에 대한 소유권을 NFT로 증명할 수 있다. 간단히 생각하면 차량 소유권을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것이다. 타다·어니언에서 엠블코인까지 하나의 생태계에 있다.



3. 생존 비결은 ‘약속 지키기’


엠블의 전신은 2012년에 설립된 이지식스다. 우경식 대표를 중심으로 서울대 개발동아리 멤버들이 함께 창업했다. 여러 가지 사업 아이템을 도전해보다 동남아에서 모빌리티의 가능성을 보고 피봇(사업 전환)해 엠블로 자리잡았다.

Q 많은 스타트업이 자금난을 호소한다. 사업을 확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첫 번째는 제로 커미션이라는 약속을 정말 끝까지 지킨 점이다. 어려운 시기에도 약속을 지켜 기사들의 신뢰를 얻었다. 두 번째로는 헛돈을 쓰지 않았다. 정말 써야 할 때만 돈을 썼다. 불특정 다수에게 효과도 알 수 없는 쿠폰을 뿌리는 게 아니라 정말 필요한 시기에 맞춰서 썼다. 총알을 함부로 낭비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필요한 것에만 돈을 썼고, 영속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성장하려고 했다.


Q 동남아에서 사업하려는 한국 스타트업에 필요한 건.


창업자를 포함해 주요 의사결정자들이 동남아에 살아야 한다. 여러 한국 스타트업도 그렇지만, 심지어 중견 기업들도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다. 현지 환경은 글이나 자료로는 충분히 알기 어렵다. 더구나 스타트업은 기존에 존재하는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멀리서 간접적 정보를 활용해 제품을 기획하고 사업을 계획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 나와 관련 핵심 인력들이 현지에서 생활하고 배우고 경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현지 책임자도 중용한다. 진정한 다국적 조직을 처음부터 시도하고 운영하고 있다. 운영 과정에서도 시장과 부득이하게 떨어져 있는 관련 인력들은 수시로 현지 출장과 해외 오피스 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그 간극을 줄이려 한다.



4. 엠블의 미래는


Q 1등인 그랩은 언제 따라잡나.


일단 우리 목표는 2등 유지다. 1등을 넘어서지 않겠다는 안일함이 아니라 거센 풍랑을 피하겠다는 의미다. 큰 배가 앞서 항해하면 그 뒤를 따라가는 배는 상대적으로 바람의 방해를 덜 받는다. 큰 배가 앞서 맞는 바람(규제 등)은 피하면서 1위 사업자가 잘하고 있는 것, 노하우 등을 배우고 싶다.


Q 신규 진출 국가는.


일본·홍콩 정도를 보고 있다. 아시아에서 발을 넓혀가고 있다. 홍콩은 우버가 독점하고 있는데 싱가포르와 비슷하게 우리가 틈새를 노릴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은 블록체인 파이낸스 상품을 고려하고 있다. 아까 말한 NFT를 활용한 금융 상품이다.


Q 한국은.


카카오모빌리티가 독점기업이 되면서 주요 플레이어인 택시기사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다. 한국 진출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시장 진출 방식으로는 주요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을 생각 중이다. 지금은 구체적으로 공개하긴 어렵지만, 주요 한국 모빌리티 기업들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Q 모빌리티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모빌리티는 단순한 사업 대상이 아닌, 다양한 참여자들이 얽히고설키는 하나의 에코 시스템(생태계)이다. 그런 맥락에서 ‘제로 커미션’ 라이드 헤일링을 시도하고, 동남아 운전자와 승객의 문제를 해결하며, 블록체인을 통한 혁신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기존 사업을 잘하면서 시대와 기술 발전에 맞는 새 모빌리티 사업에 진출하는 게 목표다. 짧게는 자율 주행, 길게는 우주도 우리에게 불가능한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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